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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이야기

코로나가 바꾼 인천공항 '갑·을 관계'

by terryus 2020. 6. 23.

 ‘易地思之(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처지를 서로 바꿔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공항 제1·2여객미널에 입점한 면세점들 사이의 갑·을 관계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8월 계약이 종료되는 제3기 면세사업권을 갖고 제1터미널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신라와 롯데에 대해 연장운영 조건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약이 끝나면, 당연히 방을 빼는 것이 원칙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은 복잡하다.
 입찰을 통해 새 사업자를 선정했지만 낙찰자들이 사업권을 포기해 새 사업자가 없는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기존 면세사업자들이 계약 종료로 철수하면 인천공항 제1터미널 일부 면세 매장이 문을 닫아 영업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2조원이 넘어 전세계 매출 1위에 세계 최고 인천공항에 입점한다는 상징성과 더불어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인천공항 면세점들이 코로나19로 새 사업자가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 면세점이 텅 비어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3월 제1터미널에 대기업 사업권 5개와 중소·중견기업 3곳 등 8개 사업권에 대해 입찰을 실시했다. 1개 사업권를 제외한 7개 사업권의 낙찰자가 선정됐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계약은 대기업 1곳(현대)과 중소·중견 1곳(엔타스)만 계약하고, 나머지 6개 사업권의 낙찰자로 선정된 신라와 롯데, SM, 그랜드관광호텔, 시티플러스는 사업권을 포기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높은 임대료를 내고 영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1터미널 5792㎡에 34개 매장, 6개 사업권은 현재 주인없는 상태가 됐다.
 코로나19 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6개 사업권에 대해 언제 입찰이 진행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5년 전 6개 사업권을 낙찰받아 운영하던 신라와 롯데, SM, 시티플러스가 매장을 철수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호황기라면 낙찰자가 입찰을 포기하지도 않겠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하루 매출이 1억도 안돼 면세점들은 문을 열어둘수록 적자폭도 증가하고 있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 면세점에 인천공항 안내로봇인 '에어스타'만 홀로 돌아다니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당근’으로 매월 받는 임대료 대신 영업요율로 20∼30%를 제시했다. 영업요율은 매출액에 연동해 임대료를 내는 방식으로, 면세점들이 1억원의 매출을 올리면 이 중 2000만∼3000만원을 공항공사에 내는 것이다. 매출이 줄면 임대료 부담도 경감된다.
 2001년 인천공항 개항때부터 면세점들은 언제나 ‘을’의 위치에 있었다.
 인천공항공사 전체 매출의 50% 이상의 임대료를 부담하면서도 면세사업권의 연속성을 위해 면세점들은 항상 눈치를 봐야 했다. 입찰 때마다 ‘최고가’를 쓰면서도 입찰 정보를 얻기 위해 귀는 항상 인천공항공사쪽으로 열어두었고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인천공항의 집 주인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이며, 면세점들은 임차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천공항공사는 임대료를 받지 않고 영업요율로 받을테니 어떻게든 매장을 유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집 주인이 임차인에게 돈을 안 받을 수도 있으니 계속 살아달라고 하는 셈이다.
 면세점들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로 출국객이 거의 없는 탓에 매출이 99% 줄어 문을 닫아야 할 판인데 공항공사의 요구를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라는 현재 월 300억원 이상, 롯데는 2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다.
 면세점들은 인천공항공사가 향후 입찰에서 사업권 보장만 해 준다면 어떻게든 버텨본다는 입장이다. 언젠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항공수요가 회복돼 다시 호황을 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 중앙 루이비통 매장 앞은 늘 쇼핑객들로 북적거렸지만 코로나19로 이젠 인적도 없다

 그러나 국가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로서도 이런 보장을 할 수가 없다.
 또 영업요율도 공항공사가 제시한 것보다 적은 10∼15%를 해 준다면 매장을 운영하겠다는 면세점도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17년 만에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항공사는 지난해 2조7690억원 매출에 890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163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했지만, 인천공항에 입점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임대료를 종전 20%에서 50%까지 늘리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도 50%에서 75%까지 감면 폭을 확대해 매출 반토막에 적자폭도 3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19가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적자 폭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운항과 여객이 끊겨 공항시설료에 면세점과 상업시설의 임대료 수익도 대폭 줄어 정규직 직원과 자회사 3곳 등 1만1000여명의 월급도 빚 내서 줘야 할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정규직과 자회사 직원 급여로만 연간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돼 항공수요 회복이 늦어지면 인천공항공사가 국비 한 푼 없이 자체 조달하고 있는 4조2000억원의 인천공항 4단계 건설사업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차츰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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