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환 제 8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60)이 9월 29일 해임됐다.
2001년 인천공항 개항 이후 8명의 사장 중 임기를 못 채운 사장은 구 전 사장이 처음이다. 7명은 사장은 임기를 다 채우거나, 정치권 진출 등을 위해 자진 사퇴한 경우이다. 구 전 사장처럼 잘린 경우는 없었다.
구 전 사장은 특히 자신을 낙하산으로 임명해 주고, 30년 이상 근무한 소위 ‘친정’인 국토교통부에 의해 해임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국토부는 구 전 사장의 해임 이유는 2019년 10월2일 국정감사 당시 태풍에 대한 비상 대비태세 소홀과 당일 일정에 관한 사유서를 국토부와 국회에 허위보고 하고, 인천공항공사 직원에 대한 부당한 직위해제 지시 등 공공기관장으로서의 ‘충실의 의무’ 위반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구 전 사장이 부당하다고 반발하자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국토부는 구 전 사장이 직무수행을 게을리하고 인사운영의 공정성을 훼손한 책임을 물어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해임을 건의했고, 공운위는 이를 의결했다. 국토부장관의 제청과 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구 전 사장은 공운위 해임이 결정된지 4일만에 인천공항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구 전 사장은 “부당하다”며 국토부에 감사 결과를 재심의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법적 소송도 예고했다. 그러나 법적 소송에서 이긴다해도 인천공항 사장에는 복귀하지 못하고 3년 중 절반 남은 임기의 월급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국토부가 구 전 사장을 해임한 이유로 공공기관장으로서의 ‘충실의 의무’ 위반이라고 밝혔지만, 국토부에서 잔뼈가 굵고 자신들이 낙하산으로 임명한 선배를 ‘무 자르듯’ 자른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동안 관례로 봤을때 ‘충실의 의무’ 위반은 해임보다 약한 주의나 견책 등 경징계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4대 고 이채욱 사장은 국토부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청와대와 업무 협의를 해 국토부의 질시를 받았지만 꿋꿋이 임기 3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인천공항 안팎에서는 ‘충실의 의무’ 위반은 명분일뿐이고, 아마도 진짜 이유는 정부에 ‘괘씸죄’로 잘렸다고 보는 측면이 지배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더딘 정규직화’와 ‘ 리더쉽 부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취임 3일만에 인천공항을 방문해 1호 공약으로 ‘비정규직 제로(ZERO)화’를 선언했다.
당시 제7대 정일영 사장(현 국회의원)은 “인천공항 1만명의 비정규직를 정규직화 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인천공항공사는 60개 용역업체 소속인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9785명을 3개 자회사를 설립, 전환 배치해 고용 안정을 이뤘다.
이 중 직고용 대상인 소방대(211명)와 야생동물통제 30명은 공모를 통해 선발했다.
문제는 인천공항공사가 직접고용할 대상인 보안검색요원 1902명에 대해 구 전 사장이 내·외부의 반발에 부딪혀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인 인천공항공사 노조는 “펜이 부러졌다”며 ‘공정’을 내세워 강력 반발했다. 일부는 ‘인국공’이라며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이름을 줄여 마치 큰 일이 난 것처럼 사태로 만들어 취업준비생들을 부추겼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 계약서를 다시 써야하는 ‘고용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정규직화가 ‘사회·정치적 논쟁 거리’로 비화되고, 특히 일부 언론은 구 사장을 앞세워 연일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다.
인천공항공사 상급기관이 국토부와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청와대에서 봤을때, 구 전 사장이 미덥지 않게 보였을뿐만 아니라 공공무문에서 추진하는 정규직화가 동력을 잃을수도 있는 등 위기 상황에 이른 것이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구 전 사장이 청와대에서 인사 문제로 7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국토부의 감사를 받을때만 해도해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정부는 '고용안정'을 위한 정규직화를 위해 결국 장수를 바꾼 셈이 됐다.
구 전 사장은 지난 6월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로 신분을 바꿔 12월까지 정규직화 하려던 계획을 발표했지만 진척없이 시간만 흘러 보냈다. 구 전 사장이 해결하지 못해 ‘잠시 멈춤’ 상태인 보안검색요원의 직고용은 2021년에도 계속적인 논란과 다툼이 예상된다.
또한 구 전 사장은 보안검색요원 ‘직고용’에 반대하는 노조와 심각한 갈등을 겪은데다, 이로 인해 조직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
구 전 사장은 지난 6월 보안검색요원의 청원경찰로 바꿔 직고용하는 기자회견에서 노조원 수백명이 욕설과 함께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었다며 노조 집행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노조는 보안검색요원 직고용에 반대하며 ‘구본환 OUT’를 외쳤고, 사무실마다 도배를 했다. 심지어 직고용을 추진했던 구 전 사장을 포함해 경영진의 사진까지 '부끄럽지 않나'며 내 걸었다. 사진이 걸린 한 인사는 “인천공항을 다녔던 것이 후회된다”며 탄식했다. 노조는 휴가를 내고 매주 세종시에 있는 국토부에서 집회도 했다.
특히 일부 직원은 구 전 사장과 관련이 있는 내부문건을 유출해 구 전 사장을 공격하기 위해 수단으로 활용했다. 직고용으로 관리직과 일반직원들간의 갈등과 험담도 도를 넘어 봉합하기가 힘들 정도가 됐다.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말까지 돌았다.
특히 구 전 사장은 ‘코로나19’로 항공사와 면세점보다 인천공항이 더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여객 감소에 따른 비상경영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이용객이 1260만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7117만명에 비해 82.3% 감소한 것이다. 이용객 감소와 면세점 등 상업시설 임대료 감면 등으로 매출도 1조780억원으로, 지난해 2조7592원에 비해 61% 감소할 전망이다. 2004년부터 16년 동안 이어온 흑자행진이 끝나고, 올해는 453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매출이 급감하고 적자경영인 상황인데도 구 전 사장은 ‘긴축 경영’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공항 이용객이 하루 5000명인데,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직원 1500명에 3개 자회사 직원 1만명 등 1만5000명이 출근하고 있다.
항공사와 면세점 등 상업시설들은 유·무급 휴가에 순환근무 등으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은행 빚에 의존하고 있다.
썰렁하다 못해 유령공항처럼 변해버린 제1·2여객터미널과 탑승동은 여전히 20만명 이상이 이용할때처럼 운영되고 있다. 가끔식 여객터미널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용객보다 목에 출입증을 한 상주직원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이는 인천공항공사뿐만 아니라 인천공항에 상주하는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ㆍ외국인청이나 인천본부세관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기관들은 인천공항 이용객이 늘어날때마다 인력을 충원했다. 그러나 이용객이 코로나19로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인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적자경영과 해임된 구 전 사장을 이을 새 사장이 선정되면 제3대 이재희 전 사장이 했던 것처럼 구조조정을 할 지도 모른다.
국토부가 또 국토부 출신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낼지도 관심사다.
인천공항 안팎에서는 “자신들이 임명한 국토부 출신 사장을 자르고, 또 임명하는 것은 낮짝도 없는 짓거리”라는 말도 돌고 있다.
인천공항 사장 8명 중 국토부 출신은 제 1대 강동석 전 장관, 2대 조우현(전 국토부 차관), 5대 정창수(전 국토부 차관), 7대 정일영(전 국토부 1급), 8대 구본환(전 국토부 1급) 등 5명이다. 전문경영인은 3대 이재희, 4대 이채욱이다. 제6대 박완수 사장(현 국회의원)은 전 창원시장이다.
일부에서는 제9대 사장 후보자로 국토부 출신의 몇몇 차관들의 이름과 경찰청장 출신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벼룩도 낮짝이 있다던데…’ 국토부가 후임 사장을 어떻게 할지 두고 볼 일이다.
10월22일 인천공항공사에 대한 국정감사가 끝나면, 아마도 사장 공모가 시작될 듯하다.
인천공항도 내년이면 개항 20주년을 맞는다. 외부에서 ‘힘쎈’ 낙하산 사장만 기다리지 말고, 전·현직 출신 중에 사장이 나올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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