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건설·운영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정당한 법적 권한을 갖는 사장이 두 명 존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조합은 물론 경영진과 처장단은 ‘구본환 전 사장을 따를 수 없다’며 연판장까지 만들어 공포했다. 이 또한 사상 처음이다.
인천공항에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문재인 정부가 말과 행동은 따로하고 있는 ‘구태’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제8대 구본환 인천국제공공사 사장(61)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11월 26일 승소해 12월 8일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권한을 회복했다.
2019년 4월 취임한 구 전 사장은 임기 3년 중 절반도 못채운 2020년 9월 해임됐다.
국토교통부는 구 전 사장이 2019년 10월 2일 국정감사 당시 태풍 위기 부실 대응 및 행적 허위 보고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사운영의 공정성 훼손 등 충실 의무 위반이라며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해임을 건의, 해임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불명예스럽게 퇴임했다고 여긴 구 전 사장 “해임 사유를 인정할 수 없고, 절차적 위법성도 있었다”며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구 전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구 전 사장이 허위보고를 했거나, 인사권 남용을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해 해임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1심에 불복, 12월 10일 항소했다.
1심에서 승소한 구 전 사장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실질적 사장 권한을 요구하고 있다.
등기이사 등록과 현 김경욱 사장(55)과 ‘각자 대표’, 문서 결재, 이사회와 경영진 회의 참석, 업무보고, 대외·유관기관에 복직 통보는 물론 사무실과 차량·비서·급여·보험·출입증 등 사실상 모든 사장 권한을 달라고 했다.
구 전 사장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는 해임 안건은 물론 구체적 내용도 알려주지 않고 해임을 의결했다”며 “법원이 정당한 판결을 했고, 삼권분립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명예가 회복됐고, 법원 판결로 대표권이 회복된 만큼 사장 권한은 살아 있다”며 “현 김 사장이 인천공항을 잘 운영하는 만큼 서로 협의해 인천공항을 운영할 것이며, 갈등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구 전 사장은 12월 22일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사회’에 참여하는 등 사실상 업무에 복귀했다. 구 전 사장은 “이사회에 참석해 내년도 예산안 등을 처리했다”며 “조만간 인천공항이 아닌 경기도 광명에 임시 사무실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 사장은 만약 이사회에 참석시키지 않았을 경우, 내년 예산안 처리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했다.
구 전 사장의 해임은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구 전 사장은 12월23일 기자들과 만나 “자신은 ‘인천공항 1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인국공) 사태’ 때문에 해임된 것”이라며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등 정부에 분노를 표시했다.
국토부 고위직 출신인 구 전 사장이 태풍 때문에 국정감사를 받다 인천공항을 살피러 갔고, 태풍이 소멸돼 인천공항에서 경기도 과천에 가서 지인들과 저녁식사로 26만원 결제한 것을 두고 해임했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시에도 ‘뒷 배경’이 있을 것이란 추측은 무성했다.
결국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한 자리에서 약속한 ‘인천공항 정규직화’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인천공항 정규직화는 문 대통령 임기말인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채 ‘숙제’로 남아있고, 두 명의 사장이 인천공항을 경영하게 만든 셈이 됐다.
비록 1심 판결이라고 해도 국토부와 기획재정부, 청와대 등 행정부가 나서 구 전 사장을 해임했지만, 사법부는 다른 판결을 내려 구 전 사장 해임이 부당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낙하산 인사 때문이다. 구 전 사장과 현 김 사장은 모두 국토교통부 고위 관료 출신들이다. 무늬만 공모를 통해 낙하산으로 임명됐다.
국토부는 당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내정된 최정호 전 국토부 차관이 건설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자, 함께 공모했던 구 전 사장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최 전 차관은 부동산 문제로 장관에 임명되지 못했으며, 결국 국립항공박물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토부는 구 전 사장을 해임하면, 구 전 사장이 순순히 따를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뚝심’ 있는 구 전 사장은 이에 불복해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1심에서 승소했다.
국토부는 국토부 출신인 두 사장 들에 대해 1심 판결이 났는데도 ‘1사 2사장 체제’를 유지할지, 인사권과 경영권은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런 조치를 못하고 있다.
소송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을텐데도 지난달엔 ‘윤대기 상임 감사위원’을 또 낙하산으로 임명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감사위원은 아예 낙하산이 관행화됐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구 전 사장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임직원이 대립하는 꼴이 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와 임직원들이 구 전 사장의 업무 복귀를 반대하며 연판장을 돌린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구 전 사장이 1심 판결로 ‘법적·행정적’으로 사장으로 회복한 만큼, 사무실과 급여·보험 등 예우는 제공할 수 있지만, 최종판결 때까지 향후 문제의 소지가 될 ‘계약이나 MOU’ 등 모든 경영권과 인사권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12월 2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경영진은 ‘구본환 사장에게 드리는 건의문’을 통해 “1심 판결로 명예회복된 것은 다행이나, 이로 인해 조직이 다시 혼란스러워져서는 안된다”며 “경영진은 현 김사장을 중심으로 차질없이 공항운영을 해 나갈 것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경영진들은 이같은 내용의 건의문을 구 전 사장에게 전달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도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비정규직 가정을 파탄낸 구 전 사장의 업무 복귀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노조는 성명서에서 “세계 최고의 공항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구 전 사장은 자신의 죄를 속죄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을 임명한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며 “해임처분 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해서 다시 사장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허황된 망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구 전 사장이 최소한의 도리마저 저버리고 조직 혼란을 초래한다면, 인천공항 1만여 노동자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처장 30명도 “구 전 사장과 현 김 사장의 ‘각자 대표’ 체제 하에서 예상되는 경영의사결정의 불일치와 혼선이 심히 우려된다”며 “공항운영 혁신과 미래 성장 동력의 확보를 통한 글로벌 공항운영의 패러다임을 선점할 수 있도록 현 김 사장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구 전 사장은 “이번 사태는 본질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임직원과의 문제가 아니라,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과의 해임관련 소송관계에서 비롯됐다”며 “인천공항의 경영안정과 사법부 판결과 결정을 존중하는 선에서 저의 CEO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현 김 사장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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