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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이야기

툭 하면 지연, 항공사 이젠 손해배상해야 한다

by terryus 2019. 7. 12.

 앞으로 항공사들이 기상악화나 항공기 연결 관계 등으로 지연, 운항할 경우 탑승객들에게 사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지해야 한다. 예전처럼 승객에게 알리지도 않고, 공항에서 무조건 기다리게 했다가는 항공권 환불뿐만이 아니라 신체·정신적 위자료까지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1월29일 오전 6시55분 인천공항에서 필리핀에어아시아 Z2 037편을 타고 필리핀 칼라보국제공항으로 가려던 승객들은 항공기가 연착돼 인천공항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예정대로라면 필리핀에 오전 10시15분에 도착해야 했지만 지연 운항 때문에 항공기는 같은날 오후 3시13분에 출발, 필리핀에는 당초 도착시간보다 8시간 30분 늦은 오후 6시45분에 도착했다.
 탑승객들은 항공기 출발이 지연되는 것을 모르고 인천공항에 와서 기다렸고, 필리핀에도 늦게 도착해 미리 짜둔 여행 일정을 취소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등 해외 여행을 망쳤다.
 국내에 돌아온 탑승객 50명은 항공사를 상대로 지난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지난해 10월 1심에서 “항공사는 탑승객에게 1인당 3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항공사는 이에 불복, 항소했지만 지난 7월3일 서울동부지법 민사 1부는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리모델링으로 한층 밝아진 제1터미널 3층 출국장

공항에서 항공사의 지연, 운항은 비일비재하다.

 국내선은 출발예정시간보다 30분 늦으면, 국제선은 1시간 늦으면 지연 운항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항공사의 지연 운항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을뿐, 소송 등은 하지 않았다. 소송비용에다가 입증하기로 힘들어 승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은 늘상 ‘안전’을 주장한다. 또한 몬크리올 협약에 근거해 면책을 강조한다.
 국제항공운송계약과 관련된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의한 협약(몬트리올 협약) 제19조 ’지연‘에 대해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운송인은 승객·화물 또는 화물의 항공 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은 본인·그의 고용인 또는 대리인이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하였거나 또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에어아시아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김&장은 칼리보국제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 준비를 했으나, 칼리보공항의 활주로 아스팔트 작업으로 활주로를 사용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출발이 지연됐다며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메일로 지연 출발을 안내하면서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30일 이내로 항공일정 변경, 90일 이내에 사용할 수 있는 항공사의 크레딧으로 변경, 전액 환불 조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탑승객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손해를 피해기 위한 조치를 다했다며 면책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소송을 제기한 탑승객들이 탈 비행기는 애초부터 지연, 운항될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버스처럼 계속 터미널(공항)을 오가며 운항한다.
 Z2 037편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에 앞서 1월28일 필리핀 타클로반∼마닐라를 운항하면서 관제 통제로 20분 대기했고, 이어 마닐라∼타클로반으로 다시 가면서 항공기 시스템 정비로 1시간43분 지연, 운항했다.
 또 다시 타클로반에서 마닐라로 가면서 출발차례 대기, 관제통제로 2시간 지연됐고, 마닐라에서 칼리보로 가면서도 항공기 혼잡으로 인한 관제대기로 2시간43분, 칼리보∼인천공항까지 활주로 이용통제 등으로 모두 9시간이 지연됐다.
 현지 사정으로 이 항공기는 사전에 지연, 운항하게 돼 있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항공사는 출발 예정시간 1시간 41분 전인 29일 오전 5시14분에 탑승객들에게 이메일로 통지했다. 최소한 6시간 이상 지연이 예상됐음에도 미리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이다.

제2터미널 3층 출국장 면세점 모습

 보통 항공기를 타기 위해서는 탑승 수속 등을 위해 공항에 2∼3시간 전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승객의 입장이 아닌 항공사는 형식적인 통보에 그친 셈이다.
 또한 이메일이 아닌 탑승객들이 신속히 확인할 수 있도록 유선전화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도 보내지 않아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몬트리올 협약 19조는 항공지연에 따른 승객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배상 여부나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아 민법 제751조에 따라 배상해야 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판부는 “탑승객들이 8시간 이상 대기하고, 항공사는 항공기가 필리핀에서 출발도 하지 않는 오전 5시부터 탑승권을 발권했다”며 “항공기가 현지에서 지연 출발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안내하지 않은 것은 탑승객들이 다른 항공편을 이용할 기회마저 박탈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탑승객들이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하고 여행일정 전반에 지장을 초래한 점을 고려하면 항공사는 위자료를 1인당 30만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비슷한 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
 2017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연휴때 짙게 낀 안개로 인천공항 항공기 안에서 14시간 동안 대기하다 대체 항공편 제공 없이 결항돼 여행을 망친 승객에게 항공사가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판결도 있다.

 

지난 5월말 문을 연 인천공항 입국장면세점 모습

 지난 5월 서울서부지법 민사36단독 주한길 판사는 탑승객 2명이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판결했다. 탑승객은 2017년 12월23일 오전 7시20분 인천공항을 출발, 같은 날 오전 9시40분 일본 도쿄에 도착예정인 이스타항공 ZE605편에 탑승했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인천공항에 짙게 낀 안개 등으로 오후 9시20분까지 출발하지 못해 탑승객들ㅇ은 14시간 이상 비행기 안에서 대기했다.
 이스타항공은 대체 항공편 제공없이 이 항공기를 결항시켰다. 성탄절 여행을 망친 탑승객들은 항공사를 상대로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지난해 1인당 90만 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스타항공사“안개로 인한 기상악화 때문에 인천공항에 극심한 혼잡이 발생해 출발이 지연되고, 목적지 공항의 폐쇄로 불가피하게 결항됐다”며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같은 날 이스타항공 ZE605편과 출발지와 목적지가 같은 다른 항공편이 운항한 것을 감안하면, 이스타항공의 면책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은 이 항공기 탑승객 64명이 1인당 200만 원 지급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이스타항공은 1인당 55만 원을 배상하라는 강제조정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동안 항공사들은 항공기 지연이나 결항을 항공기 연결 관계나 기상 탓으로 돌렸는데, 이젠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게 사전에 구체적으로 지연 정보를 안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액을 물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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