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 이야기

9년 이어온 ‘아름다운 동행’, “평생 함께하자” 굳센 언약

by terryus 2010. 11. 16.
인천 동산고 3학년생인 김태원군(19)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뇌성마비를 앓았다.
두 발로 땅을 디디는 대신 바퀴 두 짝으로 세상을 의지해야 했다. 매일 엄마를 부르면서 울었다.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있었지만…. 어린 나이였지만 왠지 불안했습니다. 이동수업시간에도 저는 혼자 교실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마냥 울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9년째 함께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김태원군(18·왼쪽)과 김준성군이 
15일 인천 동산고 교정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 동산고등학교 제공


태원이가 초등학교(인천 서흥초교) 4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누구, 태원이를 도와줄 사람 있어? 손들어 봐.”

순간, 태원이는 부끄러움에 눈을 감았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데 소리가 들렸다.

“저요.”

녀석은 동갑내기 (김)준성이였다. “왜 도우미를 자처했냐”는 물음에, 준성이는 “그냥 손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라면서 멋쩍게 웃기만 했다.

“실은 태원이가 얼마나 심성이 고운지…. 그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준성 군)

그때부터 준성이는 태원이의 손과 발이 되었다. 화장실도 같이 가고 밥도 같이 먹었다. 수업시간에 물건을 떨어뜨리면 주워 주었다. 태원이는 준성이의 등에 업혀 영어회화실에 올라가 영어노래도 불렀고, 컴퓨터실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게임도 할 수 있었다.

 “금방 주워준 물건을 또 떨어뜨렸을 땐 짜증날 법도 하잖아요. 그런데 준성이는 짜증난다거나 귀찮은 기색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태원군)


 중학교 때(동산중)도 준성이는 태원이에게 등을 빌려주었다.


 “담임선생님이 글을 좋아하는 저에게 전국 글짓기 대회에 나가라고 했어요. 혼자 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준성이에게 솔직히 고백했어요. 그랬더니 준성이가 선뜻 휠체어를 밀어줬어요. 그래 1등상을 탈 수 있었습니다.”


 고교(동산고) 때는 학교의 배려로 3년 동안 준성이와 같은 반에서 생활했다. 고 1학년 때 간 제주도 수학
여행에서는 준성이와 태원이와 한 몸이 됐다. 버스나 배에서 오르고 내릴 때는 물론이고, 전동차가 갈 수 없는 험한 지형에도 준성이는 언제나 태원이를 업고 다녔다.

“그날, 준성이 등에서 바라본 마라도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해요.”

태원이는 지금까지 준성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아도 준성이가 다 알고 있을 거니까. 준성이는 진정한 친구니까.”

태원이와 준성이는 18일 함께 수능을 치른다. 태원이는 국문학과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태원이는 “문학평론을 하고 싶지만 창작도 열심히 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해 글로 표현하고 싶다”며 “준성이와는 평생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19년의 짧은 인생이지만…. 준성이를 만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준성이는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무척 쑥스러워했다. 준성이는 특수교육과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원이를 보고 장애학생들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제가 한 일이 뭐 있나요. 태원이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어야 했는데….”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댓글